지난 가을

공원, 학교, 집 주변의 고색창연한 색으로 갈아입은 낙엽의 색을 보며, 마치 나의 모습과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봄과 여름에 싱싱한 푸르름을 다하고, 오래 묵어 짙고 힘없는 색으로 저물고 있는 가을의 색들...

생기를 잃고, 떨어져서, 힘없이 쌓여가는 모습들의 애련함이 심장 저 깊은 곳까지 저벅저벅 걸어 들어와서 나를 아프게 했다.

낙엽이 차곡차곡 덮힌 가을 세상의 찬란하게 슬프고 아름다운 색의 감동에 그 안으로 이끌려 들어갔다.

풍미있는 와인색으로 깊어진 분홍, 향 깊고 건강한 올리브색으로 채도 떨어진 연두, 조화로운 브라운으로 묵혀진 주황, 황금으로 빛나는 노랑 등...

내가 좋아할 세련되고 여유로운 색들을 찾아가며, 깊이 상념하고 지나온 기억들을 회상하며 시름의 늪에서 걸어 나오기 시작하였다.

그 색들은 나의 방식으로 재구성되었고 자연의 일부인 나뭇가지들에 다시 옷을 입혀졌으며, 나는 나에게 남은 삶에 담을 꿈과 희망의 색들을 엮어가며 치유되어진다.

2023.05.03. 정동림